연예인 ???: 흑인도 노력하면 백인들이 인정해줄거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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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844회 작성일 23-12-12 03:51본문
유럽 식민지 제국의 흑인들, 그리고 미국 사회의 흑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 왔다. 어떤 이들은 적극적인 무장 투쟁을 내세우거나, 흑인들의 국가(독립), 주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는 흑인들이 실력을 양성해서 백인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일부 흑인들은 흑인들이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 백인들도 흑인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해주리라 믿었고 군 입대 및 백인 사회 협력을 적극 장려하기도 했다.

1. 프랑스의 블레즈 디아뉴
프랑스의 아프리카 식민 정책의 특징은 직접 통치와 동화주의이다. 프랑스는 자국 문화에 동화된 소수의 흑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였고, 이렇게 프랑스에 동화된 소수의 흑인 엘리트가 꾸준히 배출되었다.
블레즈 디아뉴가 이런 흑인 엘리트 중 하나이다. 그는 세네갈 출신으로, 기독교인 가정에 입양돼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았고, 관료가 된 뒤 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 콩고(현 콩고민주공화국), 기니 등지에서 근무했다.
그는 1914년 의회 선거에서 세네갈 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모든 프랑스의 흑인과 아프리카 식민지를 대표하는 단 한 자리의 의석을 차지한 인물이었고, '아프리카의 목소리'라고 불렸다.
그는 식민지 흑인들에게 프랑스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프랑스를 위해 봉사할 것을 장려했다. 그는 프랑스를 위해 피를 흘리면 언젠가 흑인들 모두가 프랑스 시민권을 받을 것이라 선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네갈을 비롯한 아프리카인의 프랑스 시민권 확보와 동등한 권리 보장을 위해 힘썼다.
그가 의원으로 선출된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이 때 블레즈 디아뉴는 프랑스 수상 클레망소와 협상을 벌여 아프리카인이 전쟁에 참전할 경우 당사자에게 프랑스 시민권을 부여하고 서아프리카에 학교와 병원을 증설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블레즈 디아뉴는 아프리카를 돌아다니며 적극적으로 흑인들의 군 입대를 장려해 흑인 군대를 모으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유럽 전쟁에 서부, 중부 아프리카인 약 16만여 명이 동원되었다. 프랑스는 흑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병력을 동원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적지 않은 흑인들이 강제동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거기에 전쟁에 참여한 아프리카인 20%가 전사했다. 분명 그것은 블레즈 디아뉴의 책임이 있었겠으나, 세네갈의 4개 코뮌에 시민권이 부여된 것은 그의 덕이었다.
미국의 대학 용어는 HBCU라는 용어가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흑인 대학"이라는 뜻인데, 흑백분리가 있던 시절 흑인 전용으로 세워진 대학들이 이에 해당한다. 당연히 흑인 대학은, 백인이 다니는 대학들에 비해 교육 수준이 낮고 시설이 열악했다.
부커는 1881년, '터스키기 기술 보통학교'를 세우고, 후에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이걸 '터스키기 전문대학'으로 만든다. 부커는 흑인들의 폭력 투쟁이나 주 분리가 아닌 실력 양성론을 내세우고, 흑인이 극도로 차별받던 시절이었음에도 미국 정부에 협력해 흑인들의 권리를 신장하자고 주장했다.
이 시기에 벌어진 미국 - 스페인 전쟁의 원인인 '메인함 침몰'(원인 불명이나 당시 미국 언론은 스페인의 소행으로 간주했고 전쟁의 원인이 됨) 부커는 사망한 승객 중 흑인이 있으므로, 미국 정부를 도와 싸우자고 주장했다. 아무튼 백인에게 협력적이었기에 부커는 다른 흑인들보다 이미지가 나았고, 터스키기 전문대학은 많은 지원을 받아 명문 흑인 대학이 되었다.
부커는 언젠가 흑인과 백인이 어울려 살기 위해, 흑인들이 충분한 교양을 갖춰야 한다고 보아 터스키기 전문대학의 교육을 기술 교육에 한정하지 않고 인문학과 교양을 교육과정에 포함시켰다. 부커는 흑백의 화합과 흑인들의 미국 사회 참여 및 공헌을 중시했다. 백인을 위해 노력하면 언젠가 백인들이 흑인을 인정해주지 않겠냐는 이유에서였다.
1915년에 부커가 사망한 뒤에도 터스키기 전문대학은 부커의 뜻을 이어받았고, 2차대전이 발발하자 '비행학과'를 설립해 터스키기 학생들은 일명 터스키기 에어맨이라는 이름으로, 미 육군항공대로서 전쟁에 참여했다.
그러나 터스키기 대학의 끔찍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대학은 미국 정부가 1932년부터 1972년까지 흑인 600여 명에게 행한 매독을 치료하지 않고 얼마나 오래 사는 지에 관한 인체 실험에 협력한 것이다.
(부커는 이 실험 전에 이미 사망해서 관련이 전혀 없다.)
이 끔찍한 생체실험 결과 수백 명의 흑인들이 영구적인 장애를 얻고 사망했고, 1997년 미 대통령이 공식 사과할 때까지 단 5명 만이 살아남았다.
터스키기 대학은 어쩌다가 이런 끔찍한 인체 실험에 협력했을까? 비인도적이고, 심지어 같은 흑인들을 이용하는 방식이더라도, 미국 사회를 위해 공헌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이 끔찍한 실험은 오늘날까지도 흑인 사회에 깊은 트라우마를 안겼고, 흑인들에게 공공 의료에 대한 불신, 반백신 및 반지성주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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