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건 간에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원한다는 건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밤 마두로를 체포해서 뉴욕의 법정에 세운 이후에는 그 요구의 무게감이 너무나도 커졌습니다.
카라카스에서 일어난 일을 세상 사람들이 다 봤는데, 트럼프 본인을 포함해 트럼프 행정부 주요 인사들이 그린란드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할 것이며 군사적 옵션도 선택지 중에 있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으니 유럽인들의 긴장감도 한층 올라간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그린란드 장악은 현실적으로는 어떤 형태일까요?
파이낸셜 타임즈(FT)가 미국과 덴마크 전현직 관리들을 취재하여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 3개를 정리한 것에 살을 붙였습니다.
1. 기존 방위협정에 따라 그린란드 내에서 미군 주둔 확대
그린란드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존재감을 1951년에 체결된 그린란드 방위 협정에 의거하여 확대하는 시나리오입니다.
덴마크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
며칠전에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도 또다시 말했지만, 이 협정은 "미국에게 그린란드에 관한 광범위한 접근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았을때 그린란드에는 10여개의 미군 기지가 있었고 1.5만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200명 미만.
실제로 덴마크는 미국에 공군기지든 해군기지든 더 많은 기지를 건설하라고 제안했고, 새로운 방위협정 체결, 그린란드의 반중적 접근의 명확화, 혹은 키프로스의 영국 기지들처럼 미군 기지를 미국 영토로 인정하는 방안까지 언급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미국의 반응이 뜨뜻미지근 하다고 합니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이 끊임없이 그린란드의 안보 문제를 들먹이고 있지만, 실제로 이 섬의 안보를 강화하는 것에 관해서는 미국에게도 권한이 있음에도 덴마크에 어떤 공식요청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 대신 그린란드와의 직접 소통을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다른 생각이 있다는 거겠죠.
2. 그린란드 독립 후 미국에 배타적인 군사 접근권 보장
덴마크와 그린란드 관리들은 미국이 그린란드의 독립을 부추기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작년 8월에는 덴마크 외무장관이 주 덴마크 미국대사에게 그린란드의 미래를 "외부세력"이좌우하려 하는 것에 항의하기도 했죠.
트럼프 행정부의 몇몇 인사들은 그린란드 독립을 미국의 안보의 위협이자 기회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독립 그린란드가 순식간에 러시아나 중국의 영향권에 포섭되거나 흡수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덴마크와의 기존 방위협정보다 한층 심화된 협정을 맺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미국은 태평양의 섬나라이자 과거 신탁통치령이었던 팔라우, 미크로네시아 연방, 마셜 제도와 자유연합협정(COFA)를 맺고 있습니다.
이 조약에 따라 이 국가들은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재정적 지원을 제공받습니다. 그 대신에 미국은 이 국가들의 영역 내에서 독점적인 군사 접근권을 가집니다. 다른 나라의 군사적 접근을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이죠.
독립한 그린란드와 이런 협정을 맺는다면 중국 및 러시아의 영향력을 좀 더 확실하게 차단할 수 있긴 할겁니다. 그리고 광물과 같은 자원에 대한 접근권에 관해서도 이를 확대할 수도 있을테구요.
문제는 태평양 섬나라와의 COFA를 생각하면 '대규모 재정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덴마크가 그린란드에 연간 7억불을 지원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그 액수는 결코 적지 않을거구요.
다른 나라에 그렇게 지속적으로 큰 돈을 쏟아 붓는 것에 트럼프 행정부 주요 인사들이나 지지층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이미 아실겁니다. 트럼프 외교의 핵심은 비즈니스 마인드기도 하구요.
그렇다면, '다른 나라'가 아니게 된다면?
3. 미국의 그린란드 합병
가능성 없는 선택지로 치부되었지만 이제는 결코 무시할 수 없게 된 시나리오입니다.
덴마크 정부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구요.
덴마크와 그린란드 자치정부가 그린란드는 판매대상이 아니라고 못박고 있으며, 여론조사에 따르면 85%의 그린란드인들이 미국 편입에 반대하고 있는 이상, 미국이 그린란드를 자국 영토로 합병할 방법은... 하나 밖에 없을겁니다.
이를 대비하여 북극권 안보 강화를 위해 42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하긴 했지만, 덴마크 관리들도 미군이 침공한다면 몇분만에 간단하게 상황이 끝날 것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강압적으로 섬의 주인이 바뀌게 된다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성립된 유럽 안보체제와 NATO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겁니다. 국제질서를 가장 파괴적으로 흔들어놓겠죠.
과연 어떻게 될까요?
일단 덴마크인들은 트럼프의 그린란드 편입 시도가 미국의 안보를 위한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행정부와 의회의 공화당 인사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강제 병합은 유럽과의 외교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NATO의 존속에 크게 의존하는 미국 방위산업에도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등의 논리로 말이죠.
하지만 코펜하겐에서는 미국이 이러는 것이 안보 문제가 아니라 메르카토르 도법의 왜곡으로 인해 실제보다 훨씬 커 보이는 그린란드에 대한 전직 부동산 재벌 트럼프의 영토 확장 욕구의 표출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린란드는 판매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박고 있는 이상, 덴마크의 한 전직 관리의 말처럼 "영토 확장을 원하는 것이라면 우호적인 해결책은 없습니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미국의 침공에 맞서서 NATO 회원국들이 집단방위조항 발동하는 상황을 보게 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