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발해, 그 이후 - 정안국의 시작과 백두산 폭발에 대하여[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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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85회 작성일 24-05-0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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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https://www.fmkorea.com/6984650484




이 글에서는 발해멸망 이후 후발해로 이어지다가, 후발해에서 정안국으로 이어지는 정황을 소개하며 이야기해봤습니다.

이번 글에는 본격적으로 정안국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저번 글에서 제가 쓴 내용은, 934년 연간에 발해에서 사건이 터져서 대씨왕조가 축출되고 남해부를 위시한 지역을

세력기반으로 삼고 있었을 것이라 추측되는 열씨가 왕위를 차지한 내용 추측이었습니다.




저는 저번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열씨가 우발적인 반란이나 기습이 아닌, 대대적으로 선전포고 하고 내전을 일으켜 대씨를 축출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정권을 빼앗기고 달아났는데 수만이나 되는 무리를 거느리고, 신료와 군대까지 거느리고 온 대광현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러한 경우에는 정부 상황이 혼란스러운 경우에 많이 일어나므로 발해왕제가 934년에 사망하고 대광현이 이어받아야 할 시기에 반란을 일으켜 대씨 세력을 몰아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934년 말, 대광현이 고려로 달아난 후 내전은 열씨의 승리로 거의 끝나고, 대광현의 축출 이후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대씨로 추정되는 대진림이 12월에 고려로 망명해 옵니다. 그리고 938년에는 임승(박승이라고도 합니다.)이 3천호를 이끌고 고려로 항복해 달아납니다. 이를 생각해보면, 대광현은 열씨에게 밀리는 것을 직감하고 가망이 없는 것을 본 다음 재빨리 고려로 몸을 피한 것이고, 대진림은 뒤늦게까지 저항을 하다가 결국 대세가 완전히 기울어서 도망나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임승의 경우에는 열씨에게 협조하지 않고 938년까지 대항하고 있다가 더이상 저항이 힘든 상황이 되어 고려로 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이들이 데려온 3천호라는 인구, 그리고 대광현이 데려간 수만명의 군사와 관료들이 빠져나감으로 인해 정안국은 시작부터 매우 삐걱거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후발해 시절까지는 발해 시절의 국력을 어느정도 온존할 수 있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안국의 역사를 보면, 유독 타국들인 거란과 여진, 철리말갈에 상당히 흔들리고 시달리는 모습들이 사료에 보입니다.



물론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그 국력이 완전하게 날아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정안국 역시 휘하에 말갈과 여진을 어느 정도 데리고 있는 것으로 현재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국력은 당연히 발해 시절, 후발해 시절보다는 상당히 약화된 국력일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내전으로 정안국을 세운 것은 좋았지만 스스로 국력을 약화시켜 주변국들에게 내내 시달리게 된 원인이 여기서부터 제공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935년과 936년에 중국에 간 사신의 내용을 살펴보면,




오대회요』 30권 中


-청태 2년(935) 12월, 남해부도독 열주도 등을 보내 조공하고 방물을 바쳤다.


-3년(936) 2월에 입조사 열주도를 검교공부상서 정당성공부경 오제현시광록경으로 삼았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역대 발해왕들이 즉위할 때는 자신의 즉위를 중국에 알렸으며, 이는 거의 자신의 일족 혹은 왕자(태자)를 주로

보내어 왔습니다. 대인선이 즉위한 다음년으로 여겨지는 907년에는 왕자 대소순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으며,

대이진이 즉위한 직후인 832년에도 왕자인 대명준이 사신으로 중국에 갔으며, 정왕이 즉위한 직후인 810년에도 왕자인 대연진이 사신으로 중국에 갔습니다. 813년에도 희왕이 즉위한 직후,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왕자와 신문덕이라는 신하가 중국을 방문한 전례가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을 보면, 국왕이 즉위하고 다음년도에 대부분 사신을 파견하여 그 년도 혹은 그 다음년도에 사신이 중국에 도착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제가 예측하고 있는 정안국 역시 그 전례를 따랐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934년에 내전이 일어나서 대광현이 고려로 탈출한 직후에 열씨 왕이 왕위에 올랐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전례를 따라 그 다음년도인 935년에 자신의 일족 혹은 후계자인 열주도를 중국으로 보냈다고 생각하면 아귀가 대충 들어맞게 됩니다.



그리고 938년에 상술한 임승이 마지막으로 포기하고 빠져나감으로 정안국의 열씨 정권이 공고하게 들어서게 되었다고 봅니다.



더불어 935~936년에 정안국을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열씨 정권에서 사신을 보냈는데도, 중국에서 그 국호를 정안국이 아니라 발해라고 써 놓았던 것은, 그 전까지 이들을 계속 발해라고 써 왔기 때문에 그것이 익숙해서 그런 것, 혹은 935~936년 당시에는 바로 정안국이라는 국호를 쓰지 않고 발해 국호를 쓰다가 중간에 바꾼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시작이 매우 깨끗하지 못하고 매끄럽지 못했지만, 대씨 세력을 몰아낸 이후 열씨의 정안국이 확고하게

자리잡았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후 900년대 중반의 대부분에 정안국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후로 나오는 것은, 후주의 현덕 연간(954~959)에 수령 최오사 등 30명이 귀화했다는 것이 송사와 오대사에 나옵니다.(이 최오사는 오기이며, 문헌통고에는 이 인물이 '오사라'라고 나옵니다.) 이 인물이 오씨일 가능성임을 들어서 954년경에 거란이 정안국을 쳐서 피해를 입혀 달아난 이들이라는 주장도 존재하지만, 이 때 달아난 인구는 고작 30명에 불과하고, 이 인물이 최씨인지 오씨인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신빙성은 낮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분명히 약화는 되었어도 발해국의 대부분을 이어받은 후발해와, 그 후발해에서 국력이 좀 이탈했어도 그것을 다시 이어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정안국이 왜 900년대 후반에는 동네북이 되어 나오는지 의문이 많을 것입니다. 물론 거란과의 대립과 요사에 쓰여있는 철리말갈의 괴롭힘, 흑수말갈과의 대립도 원인일 것입니다. 저는 이것에 대해서는, 내전에서 까먹어버린 국력이 생각외로 많다고 우선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대광현이 데리고 달아난 인원에는 발해군 뿐 아니라 관료들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나옵니다. 이들이 사라지면서 행정의 공백과 마비가 일시적으로 생겼을 가능성도 보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부터는 954년의 의미 많지 않은 사료를 제외하면 딱히 정안국에 대한 기록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안국의 쇠퇴는 자멸, 그리고 철리말갈과 여진과의 대립, 거란의 집중마크로 생각이 되지만, 요사를 읽어보면 거란은 중국에 집중하느라 생각외로 정안국 방면을 많이 공격하지 못합니다. 공격한 정황이 보이는 사료는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나라가 약체화가 될 정도인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그 외의 요인으로는, 제 뇌피셜이자 의외이지만, 발해 멸망 원인 중 하나로 제기되던 백두산 폭발설이 이 정안국의

상황과 어느 정도 맞물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https://namu.wiki/w/946%EB%85%84%20%EB%B0%B1%EB%91%90%EC%82%B0%20%EB%8C%80%EB%B6%84%ED%99%94



나무위키에 있는 항목이 설명을 간략하게 잘 해놓아서 가져왔습니다.



이 946년 백두산 대분화에 따르면, 백두산의 분화는 946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마침 이 946년은

정안국이 유지되고 있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백두산의 위치는 정안국의 거의 한가운데나 다름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화산의 폭발이 정안국에 상당한 영향과 지장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도 백두산이

폭발하면 상당한 피해와 지장이 생긴다는 예측결과가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로 터진 946년에는 엄청난 피해와 지장을

주변, 특히 정안국과 말갈 지역에 주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일본 측 기록에 의하면, 그 다음년도인 947년까지 일본에서 지진이 들렸다고 하는 것을 보면, 화산 활동이 꽤 오래 지속되어 상당한 피해를 입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기략』 中(946년)


-이 날 하늘에 소리가 있었는데, 마치 우레와 같았다.




물론 947년까지 화산이 계속 폭발하거나 계속 활동하여 피해를 주었다는 것은 현재 확답이 어려우나, 만에 하나 이것이 진짜라면 정안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고, 나라 자체가 마비되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백두산은 정안국의 한가운데에 있었으므로, 백두산을 포함하고 있는 정안국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을 가능성은 100퍼센트라고 생각합니다. 이 상황에서 여진이나 말갈의 침입까지 받으면 대응을 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이 때를 노리고 쳐들어온 외침에 의해 나라가 결정적으로 국력과 기세가 꺾이지 않았을까 하고 예측해 봅니다. 그를 대변할 수 있는 사료로 추측되는 사료가 현재 존재합니다.




요사』 5권 세종본기 中


-(950년)겨울 10월에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 정벌을 나서서 안평성, 내구성, 속록성 등을 공격하여 항복시키고 많은 노획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여기서 몇 가지를 살펴보면, 우선 요사에서 정안국이라는 표기가 절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로 요사 어느 한 구석을 살펴보아도 '정안국'이라는 글자는 단 한번도 보이지 않습니다. 동시기에 있던 고려와 송의 사서에 정안국이 등장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입니다. 대신 정안국과 관계된 기록이라던지, 정안국을 공격한 내용은 철저하게 '여진'으로 뭉뚱그려 부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진짜 여진도 존재하며, 진짜 여진과, 정안국을 '여진'이라 부른 기록을 따로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 보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두 나라의 위치와 특성은 달라서, 요사에서 여진이라는 단어를 쓰는 주체가 나온다면, 그 내용에 나오는 위치와 사건을 보고 어느 정도 정안국인지, 진짜 여진인지 구분이 어느정도 가능합니다. 그 예로, 거란이 986년에 대대적으로 정안국을 크게 친 기사에도 정안국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고, 이 때에도 여진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요사』 11권, 성종 2권 中


-통화 4년(986) 봄 정월 갑술일, 토하에서 물고기 잡는 것을 구경하였다. 임하 야율모로고와 창덕군절도사 소달람이 동쪽을

정벌하고 잡은 포로를 바치니, 조서를 내려 칭찬하였다. 병자일에 추밀사 야율사진과 임아 소근덕 등이 여진을 토벌하고 잡은 포로 10만여명과 말 20여만필, 그리고 여러가지 물품을 바쳤다.





학자들은 왜 거란이 정안국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여진이라는 단어를 썼는가? 라는 질문에 정안국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여진과 대립도 하지만 여진과 편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안국을 인정하지 않는 겸, 여진과 꽤 어울리니 그냥 여진으로 퉁쳐버린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정안국을 칠 때는, 꼭 어딘가를 쳤다. 라고 이야기하는 대목보다, 간접적으로 드러나게, 위의 사료처럼 남쪽 or 동쪽 정벌을 하였다. 라는 식으로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생기는 것은, 동쪽 말고 남쪽 정벌을 할 때에는, 남쪽 정벌에는 중국 방향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 기사에 나온 남쪽이 죄다 정안국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안국과 얽힌 사료를 볼 때는 여진이냐 아니냐, 그리고 중국이냐 아니냐. 이 구분이 사람을 상당히 헷갈리게 합니다.



위의 사료 역시 정안국을 친 것으로 추측되는 사료이며, 그 이유는 '안평성'을 쳤다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안평성이 어디인지는 대충 고려도경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선화봉사고려도경』 3권 中


-말갈에서 발원하는 압록강[鴨綠水]은 그 물빛이 오리 머릿빛[鴨頭]과 같아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요동(遼東)과는 500리 떨어져 있는데 국내성(國內城)을 거치면서 다시 서쪽으로 한 강물과 합류하여 흐르는데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 이 두 강물이 합쳐서 흐르다가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사료에 따르면 안평성은 압록강, 그것도 바다에 인접한 압록강가에 있는 성으로서, 대략 압록강 하구에 있는 성으로 생각됩니다. 후발해-정안국이 초반에는 발해의 영토를 상당부분 이어받은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압록강 하구에도 정안국의 영토가 이 때 있는 것이 딱히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게 다 맞다, 진리다 라고 완전히 얘기할 수는 없는 항목이지만, 이것들이 사실이라면, 지금껏 후발해,정안국을 딱히 크게 공격하지 않고 있던 요나라가 화산 폭발이나 그 외 천재지변, 그로 인한 국력 약화를 겪은 정안국을 공격하여 타격을 입히고 성과를 내어 돌아왔을 가능성도 꽤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정안국의 본격적인 약화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왜 946~947년인 화산폭발 당시에 치지 않았는가? 라는 의문을 가질 법도 합니다. 그런데 요사를 살펴보면, 요나라는 940년대 중반부터 정말 바쁘게 중국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950년에 정안국을 친 것으로 추측되는 저 이후에도 바로 다시 중국으로 가서 중국과 열심히 싸웁니다. 심지어 요 세종은 시해당할 때에도 중국을 치러 나선 군영에서 시해됩니다. 그정도로 요나라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으며, 중국을 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정안국을 치지 않은 것은 중국에서 아직 해야할 일이 많아서 그런 것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래의 970년의 사료와 합쳐서 보면, '후발해'에서 '정안국'으로 넘어간 건이 확실히 언제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934~935년의 내전 이후에 열씨가 정권을 잡은 이후로 바로 바꿨을 가능성이 있으며, 백두산 폭발로 인해 확실하게 피해를 받은 이후 950년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입을 받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다음 근거지를 약간 '서쪽으로' 이동한 이후 그 때 그 곳에 자리를 잡은 이후 새로 출발한다는 의미로 이름을 바꾼 것이 '정안국'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아는 981년의 사료에서 거란에 격파되었다는 것이 926년의 발해국 멸망을 이야기할 수도 있으므로, 확신은 아직

할 수 없습니다.)




우선, 936년의 마지막 기록을 뒤로 하고, 그 다음에 나오는 정안국의 기록은, 정안국을 다루는 사료 중에서도 은근히 유명한 970년의 사료로서, 정안국의 왕 '열만화'가 송에 사신을 보내면서 기록된 것입니다.




『송사』 491 외국전 정안국 항목 中


-정안국은 본래 마한의 종족인데 거란에 격파되어 그의 추수가 무리를 규합하여 서쪽 변경을 차지하고 나라를 세워 연호를 고치고 스스로 정안국이라 불렀다. 개보 3년(970)에 그 나라의 왕 열만화가 방물을 바치러 가는 여진의 사신을 통해 표문과 바칠 방물을 부쳤다.



다음 글은 970년 이후의 정안국 동향과 그 이후 정안국에 대한 언급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안국,발해 후계세력들에 대한 기록 자체가 많지 않아서, 제가 요즘 쓰는 글들은 내용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다음편의 내용이 지금까지의 소소했던 내용보다는 좀 복잡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970년대에서 980년대~990년대의 정안국의 동향이 나오고, 제 나름대로 추측을 한 내용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글이 엄청나게 길지 않는데 둘로 나눈 이유는, 정안국의 초반에는 너무 사료가 없어서 진짜로 추측으로 때려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사료가 조금은 있는 970년대 이후로는 이야기할 것들이 생기기 때문에,

그 이전의 추측을 하는 부분(현재 글)을 아예 떼어 놓고,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을 따로 한 파트로 지정해

놓은 것입니다.


또한, 이 글은 제가 사료를 가지고 추측을 한 것이며, 여기 나온 내용이 절대진리가 아니며, 제가 제시한 설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틀린 부분도 있을 수 있으며, 다른 의견을 가지고 오시는 분도 누가 틀리고 누가 맞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야기 나누어 주시고 의견을 이야기해 주시는 분들은

환영합니다.




논의와 질문, 이야기 나누기는 댓글에서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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